안녕하세요, 안중한의원 안병수 원장입니다.
지난 6월, 일본 도야마(富山)에서 열린 제76회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에 대한한의학회 대표단의 일원이자 대한약침학회 회장 자격으로 다녀왔습니다. 이번 학회의 전체 주제는 "東洋医学の発展 - 次世代への新たな挑戦(동양의학의 발전 – 차세대를 향한 새로운 도전)"이었고, 그 안에서 한일 양국이 함께하는 "한일학술교류심포지엄"의 연자로 초청받아 제가 오랫동안 연구하고 임상에 적용해 온 "황련해독탕(黃連解毒湯) 약침"에 대해 발표하고 왔습니다. 오늘은 딱딱한 발표 내용보다는, 그 며칠간의 여정과 느낀 점을 편하게 남겨보려 합니다.
도착 첫날, 한방 원료를 만드는 현장을 보다




6월 11일 새벽 인천공항에 모여 고마츠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재동 대한한의학회장님을 비롯해 상지대 병원장님이신 차윤엽 국제부회장, 경희대의 남동우 이사님과 경희대의 김규석 국제교류이사 등 여러 임원분들과 함께한 일정이었는데, 낯선 나라에서 같은 목적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움직인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고마츠 공항에 도착한 뒤 크라시에의 이호재 대표님과 리무진 버스와 신칸센을 갈아타며 다카오카(高岡)로 이동했고, 점심 식사 후에는 크라시에(クラシエ) 다카오카 공장을 견학했습니다. 이호재 대표님과 함께 크라시에의 방문과 시설 투어를 통해서 일본에서 저희가 매일 다루는 한약재와 처방들이 실제로 어떻게 정제되고 제품화되는지 현장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는데, 황련해독탕처럼 오래된 처방 하나가 현대적 설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짧은 휴식, 도야마의 얼굴을 만나다


학회 시작 전 한나절은 비교적 여유가 있어 도야마 시내를 둘러볼 시간이 있었습니다. 물의 도시라 불릴 만큼 운하와 호수가 아름다운 도야마에서, 유리 공예로 유명한 도야마 유리미술관과 성벽과 해자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야마성을 천천히 걸어 다녀왔습니다. 일본에서 한약이 발달했던 도시에서의 과거의 일본의 한의약 산업과 현재의 제약산업 및 전통적인 한약시장을 볼수 있는 기회였고, 맑은 날씨 속에 성 앞에 서서 사진을 한 장 남겼는데, 낯선 도시에서 발표를 앞두고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저녁에는 대표단 동료들과 근처 카페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여독을 풀었습니다.
갈라디너, 한일 동양의학이 마주 앉다


6월 13일 저녁에는 ANA 크라운플라자 호텔 도야마에서 학술총회 갈라디너가 열렸습니다. 250명 규모의 큰 연회장에 한국대표단을 알리는 배너를 펼쳐두고, 일본 각지에서 온 한방(漢方)치료를 하는 의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명함을 주고받았습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결국 우리가 다루는 것은 같은 뿌리를 가진 처방과 침법이라는 사실이 이런 자리에서 더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다음 날 있을 발표를 앞두고 서로 격려하며 즐거운 저녁을 보냈습니다.
학술교류심포지엄 당일, 황련해독탕을 주제로 마주하다

6월 14일 아침, 사전 모임을 거쳐 도야마 국제회의장 제6회장에서 한일학술교류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이번 심포지엄은 유독 특별했는데, 네 명의 연자가 모두 "황련해독탕" 하나를 주제로 각자의 관점에서 발표하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일본 측에서는 마츠야마기념병원의 야마오카 덴이치로 선생님이 피부와 정신 증상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는 발표를, 히라이 외과·소화기과 의원의 사카타 마사히로 선생님이 항염증 작용을 넘어선 지혈 효과 가능성에 대한 발표를 해주셨습니다. 한국 측에서는 경희대학교 권승원 교수님이 신경계 증상과 질환을 중심으로 황련해독탕의 역사적, 현대적 활용을 정리해 주셨고, 마지막으로 제가 "Clinical Application of Hwangryunhaedok-tang Pharmacopuncture in Korean Medicine: From Traditional Theory to Evidence-Based Practice"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맡았습니다.
제 발표 이야기 - 전통 처방에서 근거 기반 약침으로


제 발표는 약침(pharmacopuncture)이라는 개념 자체를 소개하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침을 놓는 자리와 한약 약액이 결합해, 자입 부위 자체가 치료 효과의 일부가 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주사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먼저 드렸습니다. 이어서 황련·황금·황백·치자 네 가지 약재로 구성된 황련해독탕이 어떻게 증류 방식으로 정제되어 무균 주사 가능한 약침액으로 만들어지는지, 그 제조 과정을 단계별로 설명드렸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청열사화(淸熱瀉火)·해독(解毒)"이라는 전통적인 처방 이론이 실제로 어떤 현대 약리 기전으로 뒷받침되는지를 다뤘습니다. 알레르기 비염 동물모델에서 iNOS·NF-κB·TNF-α 감소를 통한 항염증 효과, 스코폴라민 치매 모델에서 아세틸콜린 증가와 BDNF 상승을 통한 기억력 회복 등 실험 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안전성 측면에서는 GLP 기준의 단회 근육투여 독성시험에서 40마리 랫드 전 용량군에서 사망례가 전혀 없었다는 결과를 공유해, 임상에서의 안전성 근거도 짚었습니다.
임상 근거 부분에서는 2019년까지 발표된 39편의 임상 보고를 정리해, 경항통·급성 발목 염좌·안면마비 같은 근골격계 질환부터 알레르기 피부염·욕창 등 피부·외과 영역, 뇌졸중 후 우울증·두통·자율신경 조절 같은 신경정신과 영역, 그리고 안구건조증까지 폭넓게 활용되고 있음을 소개했습니다. 특히 두통에 대해서는 생리식염수를 대조군으로 한 연구에서 유의한 증상 개선을 보였다는 점, 그리고 국내 약침 전체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 29편의 무작위 대조시험, 1,211명의 참여자 데이터를 분석하고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다만 발표를 준비하며 스스로도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은, 아직 연구의 수가 부족해 임상 논문 등이 더 많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었으며, 시술 프로토콜(자입 깊이, 용량 등)이 충분히 표준화되어 기술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한의학적인 관점에서는 환자 개개인에 맞추어서 더욱 세밀한 치료들이 이뤄지고 있다는 부분으로 해석이 되는 부분이기도 해서 향후 표준화된 치료와 더욱 각 질환에 대한 대규모 연구도 추가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발표의 마지막은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가"로 맺었습니다. 시술 프로토콜의 표준화, 기타 다른 치료 방법들과 대조 무작위 배정 연구, 충분한 표본 크기, 그리고 장기 추적 관찰과 국제 학술지 게재까지 – 전통에서 시작된 처방이 근거 기반 의학으로 완성되기 위해 남은 과제들을 일본의 동료 연구자, 임상가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발표를 마치고





발표가 끝난 뒤 이어진 한일 대표단 만찬 자리에서 일본 선생님들과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같은 처방을 두고 양국이 서로 다른 임상 경험과 연구 방식을 쌓아왔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로웠고, 앞으로도 이런 자리를 통해 서로의 데이터와 관점을 교환한다면 황련해독탕뿐 아니라 한의학·한방의학 전반의 근거 수준을 함께 끌어올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오후에는 English Symposium과 EBM위원회 세션도 이어졌는데, 대한한의학회 남동우 국제교류이사님이 English Symposium 좌장을, 권승원 교수님이 EBM위원회에서 "진료지침과 한방 – 한방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주제로 발표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여러 세션을 오가며 느낀 것은, 한의학과 일본 한방의학이 결국 지향하는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전통 속의 지혜를 어떻게 오늘의 언어로, 오늘의 근거로 다시 설명해낼 것인가 하는 고민을 양국의 임상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똑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짧은 소감
낯선 도시에서 낯선 청중 앞에 서는 일은 매번 긴장되지만, 그만큼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진료실과 연구실에서 다뤄온 황련해독탕 약침 이야기를 국경을 넘어 나눌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도야마 학회는 저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임상 현장에서 쌓이는 경험들을 좀 더 단단한 근거로 정리해, 다음 학회에서는 조금 더 발전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가을에 전주에서 대한한의학회의 한국 일본 교류 프로그램에서 발표가 추가로 있을텐데, 조금 더 다듬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될수 있는 발표를 다시 준비해보려고 합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